[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
아파트 30만 일자리, 중장년층 찾는다

정년 없이 입주민 위해
봉사하는 자리 매력적

  • 나는 왜 아파트에 재취업했나
  • 취임땐 여성 소장 자체가 화제, 작은 봉사・희생이 큰 보람으로
  • ‘소장님의 힘찬 숨결 있었기에’ 아름다운 입주민과 22년 행복

신성노바빌 관리사무소장 | 조경순

  •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 사회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봐도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나이다.”

    - 최훈(67·필명)
  • 나이가 있다 보니 업무에서 밀려
    1~2년 정도는 전혀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 김정옥(61)
  • “일반 회사는 구직자의 나이부터 보고 이력서도 안 읽는다.
    요즘 시대에 60세면 청춘이니
    인사담당자가 이력서 읽어볼 구직자의 나이
    그만큼 올려야 한다”

    - 노숙녀(60)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사회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봐도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나이다.

지난해 나온 아파트 경비원 최훈(67·필명) 씨 에세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의 한 대목이다. 건설회사에 다니다 2004년 무역회사를 창업했던 최 씨는 2015년 경영악화로 사업을 접는다. 이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기업들에 이력서를 보냈으나 반응이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0세 전후였다.

최 씨처럼 많은 중장년층이 정년퇴직을 전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장년층 구직 희망자들은 하나같이 “취업할 곳이 마땅히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무직으로 40년 일해온 김정옥(61) 씨.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고 한 달 정도 쉬다 재취업을 준비 중이다. 그녀는 “나이가 있다 보니 업무에서 밀려 1~2년 정도는 전혀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노숙녀(60) 씨는 이력서를 들고 회사를 직접 방문한 적도 있다. 그녀는 “일반 회사는 구직자의 나이부터 보고 이력서도 안 읽는다”며 “요즘 시대에 60세면 청춘이니 인사담당자가 이력서 읽어볼 구직자의 나이를 그만큼 올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55세~79세 장래근로희망

55세~79세 취업희망동기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55~79세 인구는 1509만8000명.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33만2000명(2.2%)이 증가했다. 55세 이상 인구 중 구직희망자는 68.5%나 된다. 취업희망 동기는 ‘생활비에 보탬(57%)’이 가장 많았다. 이들이 꼽는 최종 은퇴 연령은 평균 73세였다. 60대 초반에 정년퇴직하고 10년을 더 일하고 싶어 하는 셈이다.

이들은 일자리를 선택할 때 다른 연령대처럼 일의 양과 시간대(28.9%), 임금 수준(21.5%)을 중시하면서도 ‘계속 근로할 수 있는 가능성’(16.4%)도 따져본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둔다.

박세정 안양고용복지센터 일자리정책팀 주무관은 “중장년층의 재취업은 나이 때문에 제약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나이 제한이 적은 편인 아파트 관리나 경비 분야의 자격증 교육과정을 개설하면 구직자가 많이 모이지만 전문 자격증을 따거나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진입이 어렵다”고 전했다.

주택관리사 일자리는 매력도가 높아 자격시험 경쟁이 치열하다. 최원석 에듀윌 주택관리사 학원 원장은 “매년 1만7000명 정도가 주택관리사 시험에 응시하고 있다”며 “평생 직업이라는 장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할 일이 있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매일 아침 출근길이 설렌다.”

    - 김병부(60) | 관리사무소장
  • “100세 시대에 사람이 집에 있으면
    마음이 망가진다”

    - 양희성(62) | 관리사무소장

실제로 여러 직종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도 주택관리사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관악구 신림우방아파트 김병부(64) 관리사무소장은 공무원 출신이다. 40여 년간 병무청, 국방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일했다. 그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공인중개사, 산업보안관리사, 행정사 등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정작 그가 이끌려간 곳은 아파트였다. 그는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을 알고 시험에 도전했고 한 번 실패 후 지난해 최종 합격했다.

김 소장은 “막연히 돈을 벌겠다는 일자리가 아니라 노후에도 안정적으로 일하고 입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주택관리사 직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할 일이 있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매일 아침 출근길이 설렌다”고 일상을 전했다.

인천 동구 송현삼두1차아파트 양희성(62) 관리사무소장은 20여 년간 서울시청, 서초구청 등에서 근무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나가서 뭘 하며 살까’ 걱정하던 중 9급 신입직원이 주택관리사라는 직업을 추천해 용기를 내서 도전했다. 양 소장은 “100세 시대에 사람이 집에 있으면 마음이 망가진다”며 자신을 ‘거름’에 표현했다. 그는 “거름이 있을 곳은 집이 아니라 밭인 것처럼 내가 있어야 하는 밭은 아파트”라며 아파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올해 경비원 3년째인 장두식(70) 경비원은 코로나19로 아파트와 인연이 닿았다. 그는 요양원이나 경로당을 다니며 노래, 하모니카, 마술 등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해왔는데 2019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일이 끊겼다. 그때 아파트 경비원이 눈에 들어왔고 교육을 받고 아파트로 출근하게 됐다. 장 씨는 아파트 경비원 에피소드를 엮어 지난달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라는 책도 출간했다.

많은 사람, 특히 중장년층이 아파트를 제2의 삶의 터전으로 삼는다. 이들은 “정년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동주택관리 일자리는 평소 생활하면서 구석구석 잘 아는 곳이어서 거부감이 적다는 이점도 있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는 30만600명으로 30만 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전국에서 30만 명이 아파트로 출근한다. 소장을 비롯한 관리사무소 인력이 10만800여 명(33%), 경비 인력 10만5800여 명(36%), 청소 미화 인력 9만4000여 명(31%)이다.

6만2000여 명에 이르는 주택관리사를 관리사무소장으로 채용해야 하는 의무관리단지는 6월 말 기준 1만7849개 단지, 약 1076만 세대다. 한 개 단지에 관리인력 6명, 경비인력 6명, 청소인력 5명이 근무하는 셈이다. 신도시 건설 등에 따라 공동주택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취업 기회가 확대되는 추세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일자리의 만족도는 어떨까. 아파트 관리종사자들은 ‘만족한다’, ‘지인에게 추천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 소장은 “성실하게 근무하면 오래,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어 중장년층에 적극적으로 권한다”고 말했다.

양 소장은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은 결코 쉽지 않다”면서 “4~5개월 매일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공부할 내용이 방대해 마치 종합 학문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며 “한 번 도전해볼 만한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행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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